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예수병원, 주님을 위해 겸손히 드리는 사랑의 수고

▶ 마티 잉골드의 초기 진료 모습(출처: 예수병원 블로그 캡처)
조선선교열전 (7) – 전라북도 편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32주년을 맞고 있다. 구한말부터 본격화된 개신교 선교 역사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 곳곳의 선교역사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전주 예수병원

선교사들의 사역은 근대교육뿐 아니라 의료분야에도 미쳤다. 전주병원은 의료선교사였던 해리슨 목사가 1897년 은송리 초가집에 약방을 차리고 중하지 않은 일반 환자를 진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진료는 전주 사람들의 인심을 얻어 전도를 효과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근대 의료는 같은 해 30세 미혼의 여의사 마티 잉골드(Mattie Barbara Ingold)가 전주로 파송되어 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특별히 여자 환자들을 진찰하기 위해 은송리 작은 초가집을 수리했다. 진료 첫날에는 6명의 환자를 보았고 첫 달에 100명 정도를 진료했다. 점차 소식이 퍼지면서 여자 의사에게 진찰받기를 기피하던 남자들이 아내의 치료를 위해 왔다가 자기 병도 진찰받기 시작했다. 첫 5개월 동안 4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당시 찾아오는 환자들 대부분은 병이 악령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잉골드는 진료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영양부족으로 심하게 쇠약하게 된 아이가 왔다. 사람들은 태어난 지 21일이 되기 전에 이웃사람들이 개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했다.”(1898년 11월 15일)

“한 여자가 자기 병에 대해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크게 말하세요.”라고 했더니, 그 여자는 “병 귀신이 자기 말을 들으면 더 나빠진다고 두려워했다.”(1899년 1월 12일)

의료사역의 중심은 복음

그녀는 어떤 의료사역을 하든지 다만 진료는 부수적이고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진료소를 찾아온 환자들 중 복음을 받은 소수의 환자들이 치료만 받은 환자들보다 더 나은 결과를 보였다.

초기에는 신분이 높은 양반들은 진료소를 방문하지 않았다. 중간층에 속하는 가정들도 그리 많이 방문하지 않았고, 여자들의 차별도 심했다. 잉골드는 일기에 이렇게 고백했다.

“자신의 집에 우리를 초청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은 우리가 그들에게 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방문하면 그들이 이웃의 비웃음꺼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이 덜 드러나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사역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여자도 밖으로 나갈 수 있고, 여전히 존경받을 수 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될 것입니다.”

병이 나은 사람들 중에 여럿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중 ‘백만’이라는 사람의 할머니는 점치는 복술인으로서 잉골드에게 병 고침을 받고 난 후 예수를 믿어 나중에는 전도 부인이 되기도 했다. 또 유경선 부인이 발목에 독종이 나서 위태로웠는데 남편에게 업혀 와서 한 달 이상 치료하는 중 한글을 배우며 예수를 믿고 온 집안 식구를 교회로 인도하기도 했다.

▶ 1890년대 조선인들(출처: 예수병원 블로그 캡처)

병든 자 버림받은 자들

1902년에는 잉골드 혼자 1586명의 환자를 보았다. 1904년부터 포사이드(Wiley H. Forsythe) 의사가 와서 진료소는 더욱 활기를 띠었고, 1905년 한 해에만 둘이서 6000명의 환자를 보았다. 잉골드는 당시 전주 선교부에서 사역하고 있던 테이트 선교사와 8년의 동역 끝에 1905년 9월에 결혼하며 남편과 더불어 농촌 선교와 부녀자 성경 교육에도 힘썼다.

포사이드는 병든 자, 노약자, 버림받은 자, 나환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길가에서 거의 죽게 된 한센병 여인을 자신의 말에 태우고 가기도 했다. 그는 병으로 냄새나고 손발이 온통 고름과 상처로 덮인 여인의 팔을 붙들고 걷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진료소는 각양각색의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로 넘쳤다. 많은 경우 치료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낫고자 찾아온 사람들의 믿음과 확신은 선교사들에게 감동이자 안타까움이었다. 1906년 건강악화로 치료차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포사이드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의 사역이 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불완전함과 실수투성이였다. 그러나 비록 이 노력이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주님을 위해 겸손히 드리는 사랑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참고문헌: <전북선교 120주년과 예수병원설립 115주년 기념 포럼>(2013),<네이버-예수병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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