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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어요” – 최경희 센터장

예배와 기도로 중독자들을 섬기는 최경희 센터장 (지으신그대로 여성마약중독재활센터)

최경희 센터장 (지으신그대로 여성마약중독재활센터)

307호 | 사람풍경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마약류 범죄로 검거된 사람은 2만 7611명으로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 마약 중독자 규모는 이보다 30배가 많은 80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22년 마약 중독 치료 환자는 712명 정도, 그나마 마약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전문 병원은 전국에서 2곳뿐이다. 이런 상황에 여성을 위한 ‘지으신그대로 여성마약중독재활센터’가 최근 개소했다. 한때 마약 중독에서 어려움을 겪다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된 최경희 센터장은 이 센터를 개설, 중독 치유 전문가로서 예배와 기도로 마약 중독자들을 섬기고 있다.

– 재활센터는 언제 시작하셨나요?

“2024년 5월 21일에 시작됐습니다. 이 센터를 시작하게 된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에요. 지금 제가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한 교육생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정말로 마약을 끊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어요. 사는 곳을 물었더니 서울 역삼동에서 마약 중독자와 함께 살고 있대요.

마약을 끊기 위해서는 마약하는 사람과 분리돼야 한다고 빨리 나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일단 하루에 6만 원짜리 방을 얻어 그곳에서 살기로 했어요. 그런데 당장 돈을 벌어야 하니 강남에 있는 술집에 나가고 있는 거예요. 너무 안타까웠죠. 그때 우리 집 근처에 마약중독재활센터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무작정 센터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알아봤어요. 아주 어렵게 목동 근처에서 적당한 곳을 찾게 됐어요. 그런데 시세가 너무 높아, 우리 여건으로는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집주인이 저희가 원했던 금액으로 해주겠다고 해서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이 센터를 얻게 됐어요. 그리고 곧바로 그 자매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요. 그게 재활센터 시작일이 됐어요. 그때 그 자매를 데리러 가지 않았다면 지금은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당시 자매는 마약을 구하려고 했다가 사기를 맞고 소주에 수면제 타서 먹고 죽으려고 생각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어요. 급하게 자매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함께 예배드리고 생활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시 망상이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그 정도로 한번 중독된 마약을 끊기는 정말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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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기도신문

어떤 마약 중독자의 호소로 시작된 재활센터

– 잠깐만 들어도 기적의 연속이네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과정이 있었겠죠?

“마약 중독자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어려워요. 저도 어려운 시절을 거쳤어요. 그 시작은 대학입시였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실패했어요. 지방대학에 가는 건 창피해서 결국 삼수를 하게 됐어요. 공부를 못할 바에는 돈이라도 벌자는 마음에 술집 생활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카페와 가라오케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또 난소암에 걸려 29살에 난소암 수술을 했어요. 항암치료를 하면서 술, 담배를 끊어야 했고, 그동안 알고 지내던 노래방, 호프집, 미용실 사장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런데 너무 외로웠어요. 그러다 마약하는 친구를 만나게 됐어요. 처음에는 중독될 거 같아 마약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제게 한번 해보라고 권했죠. 거절하다가 딱 한번 시작했는데, 그게 화근이었어요. 외로움을 달래려 친구가 다니던 도박장에 함께 다니면서 그곳에서 마약을 하게 된 거죠.”

– 힘들고 어두운 시절이었네요.

“마약으로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폭력도 당했어요.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자살 시도도 몇 번 했어요. 그러다 다시 또다른 구치소에 수감되자, 더 이상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했어요. 그런데 출소가 두려웠어요. 그 상태에서 세상에 나가면, 다시 마약에 빠질 게 뻔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구치소 안에서 종교 모임에 참석하게 됐어요. 기독교 집회였죠. 구치소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 기억났어요. 검찰에 쫓기던 어느 날 제가 환청과 환각 증상이 있었는데, 그때 천군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 거예요. 당시에는 그 소리를 따라가면 내가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실제 그 소리를 따라하면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이런 체험이 떠올라 기독교 집회를 가게 됐어요.

그날 설교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런데 3일 만에 살아나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이 얘기를 듣는데 화가 났어요. 내가 마약 중독자라고 나를 무시하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됐어요.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날 수 있어? 거짓말을 해도 세련되게 포장이라도 해야지, 대놓고 무시당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어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사랑하고 죄를 다 사해주셨다. 그분은 머리카락 숫자도 다 알고 계신다.’는 거예요.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분이라면, ‘내가 평생 마약을 끊지 못한다는 것도,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어디서 마약을 받고 팔고, 돈을 받지 못한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마약을 팔고 돈을 못받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그런 생각이 들면서 펑펑 울었어요. ‘마약만 끊게 해주면 당신이 시키는 것 다 하겠다. 출소하면 교회 다닌다.’고 기도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을 주님께 드린 셈이죠.”

– 출소 이후엔 어떻게 됐죠?

“내가 살려면 교회를 다녀야겠다 생각하고, 십자가만 찾아서 무조건 갔어요. 큰 교회였어요. 우물쭈물 하고 있는 저를 한 분이 불렀어요.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하게 됐어요.”

예수님이 ‘나의 고통, 어려움’을 알고 계신다면…

– 교회 생활이 궁금하네요. 은혜가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처음 교회에 다니면서 1년 내내 울고 다녔어요. 설교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았어요. 가서 앉아 있기만 해도 눈물이 났어요. 31살에 교회를 가게 됐으니, 저도 청년 예배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청년국에서 예배드리며 형제, 자매들을 알아갈수록 제가 자꾸 위축됐어요. 100년 전통의 교회였는데, 청년들은 교회 문화에 익숙했고 직업도 번듯한 피아노 강사, 은행원 등 다양했어요. 저는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과거가 있다 보니 어울리기가 어려웠어요. 또 한편으로는 환청과 망상의 어려움이 여전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권사님에게 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귀신들렸다는데, 마음이 어려웠어요. 그때 처음으로 교회 나간 것을 후회했어요. 그러면서 환청과 망상을 준다는 귀신만 쫓아내면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교회를 다녔어요. 문제는 그 이후부터 찬송이 안 나오고 감사가 제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거예요. 그래도 한 5년 동안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성경을 읽고, 금식기도도 많이 했어요.”

– 그래도 신앙생활을 계속 해나가셨네요.

“교회를 다닌 지 1년 정도 됐을 때 또 다시 자살 시도를 했어요. 마약을 끊고 교회만 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별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던 거죠. 예전에 약에 취했을 때는 죽는 게 별로 무섭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달랐어요. 죽을 자신도, 죽을 용기도 없었어요.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는 죽을 자신도 없는데 앞으로 살아서 뭐하죠?’라고 한참을 울었어요.

그러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전과자이고 중독자이고 세상에는 내 말을 아무도 안 믿어주니까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내가 그들을 믿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주님이 주신 마음이었죠. 그러다 ‘너 할 일 있다.’라는 말을 주님이 들려주신 것 같았어요. 그래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당장 죽을 자신은 없으니까 3년이든 5년이 되든, 할 일이 있다니 일단 해보고 안되면 죽자고 생각했어요.”

– 하나님이 주신 할 일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먼저 신학교에 갈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교회 전도사님에게 신학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봤어요. 전도사님은 교회에서도 성경을 충분히 배울 수 있는데 왜 신학을 하려고 하냐고 하시더군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하나님 음성을 잘못 들었나보다 생각하고 지나쳤어요. 그러다 목사님이 설교 도중 ‘수원신학교’라는 학교 이름을 말씀하셨어요. 마치 제게 얘기하시는 것 같더군요. 이걸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원서를 냈어요. 저에게 최고의 직업은 여전도사였어요. 전도사가 되면 이제 먹고 사는 것은 걱정 없고, 이제 세상에서 탈선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받은 은혜도 크니까 평생 전도사로 살면서 교회 밥만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때는 그런 수준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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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최경희 센터장. 최경희 센터장 제공

기도 응답으로 신학교에 입학하다

– 그렇게 신학교에 가게 되셨군요.

“신학교에 다니면서 학비를 벌어야 했어요. 파출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눈물겹지만 감사했어요.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조금씩 자존감이 생겼어요. 내가 전도사라는 그룹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어요. 그런데 뭔가 늘 풀리지 않는 게 있었어요. 왜 나는 기쁨이 없지? 왜 나는 감사가 없지? 기쁨과 감사를 얻기 위해 나는 왜 꼭 금식을 해야 되지? 그때는 복음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리고 전도사님이나 목사님들이 다 거룩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군요. 거룩한 표현은 다 하는데 삶은 그렇지 않았던거죠. 저도 그 속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 모습을 어느 날 보게 되더군요. 그렇게 복음의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더욱 일어날 무렵, 교회 목사님 딸의 소개로 복음학교에 가게 됐어요.”

– 복음학교에서 어떤 깨달음이 있었나요?

“솔직히 당시는 제게 그 복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어요. 복음을 듣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교회에서 40분 설교 듣는 것도 어려웠는데, 강의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그런데 당시 6일 내내 강사 한 명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성령의 힘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복음학교에서 섬기는 사람들이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는 추억만 남았죠. 복음학교 이후 순회선교단에서 하는 중보기도학교가 있더군요. 선뜻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저 주님이 인도하는대로 한번 따라 가보자고 순종하고 싶었어요. 훈련을 받으면서 기도를 해야 되는데 저는 신학생인데도, ‘아버지’ 하고 나면 할 얘기가 없었어요. 그런데 훈련을 섬기는 선교사님들의 기도는 너무 유창했어요. 저도 기도를 배워서 신학교에서 써먹고 싶었어요. 그런데 기도는 배워서 하는 게 아니었어요. 복음이 실제가 되지 않는 저는 한마디 기도도 어려웠어요.”

– 그래도 그 훈련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셨네요.

“당시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더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으로 제 상처와 수치심을 가리고 싶었어요. 책을 안 좋아했던 제가 성경을 읽다 보니까 조금씩 책을 보게 되면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죠. 하나님이 마약을 끊게 해주셨으니, 나를 크게 사용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학을 하고 교수가 되는 것을 주님이 그 밑작업을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저는 마약을 경험해서 알잖아요. 그때 박사 논문을 찾아봐도 약물 중독에 대한 논문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나를 그렇게 사용하실 거라고 착각했어요.”

– 착각하셨다는 것을 보니 또 다른 반전이 있나보군요. 이후엔 어떻게 주님이 인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됐어요. 그 다음엔 상담을 공부하면서 꿈을 향해 달려갔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수원시 청소년 상담복지사로 일하게 됐어요. 그 무렵 남편을 소개받아 마흔 다섯에 결혼을 하고 남편과 다시 순회선교단의 복음선교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제가 복음의 진리에 부딪치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복음학교에 섬김이로 참여하며 복음을 계속 듣게 되니 내가 왜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지 보게 됐어요. 내 상처,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이상 307호에 게재>

“사실 주변 사람들이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것을 보니까 저도 하고 싶은 마음에 주님께 묻지도 않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죠. 남편을 만나기 전에 저는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4시간 자면 인생을 성공하고, 5시간 자면 실패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3처럼 10년을 살았어요.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 거죠. 그렇게 저는 수치, 폭력, 사람들과의 상처를 해결하려고,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오직 책만 봤던 거 같아요. 그러나 이것이 내 우상이라는 걸 보게 된 것이죠. 주님 앞에 정산하는 마음으로 책 100박스를 버렸어요. 그리고 박사과정도 포기하게 됐죠.”

중독과 복음 아닌 것으로부터 회복되는 은혜

– 중독에서 회복 이후에도 총체적인 회복의 과정이 있으셨군요.

“그 뒤에 지방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게 됐어요. 제가 중독에 빠져 있을 때 친구들에게 배신당하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았을 때, ‘내가 고등학교 교사 정도만 됐다면 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저의 세밀한 음성도 들으시고 외국어고등학교에 있게 하셨다는 생각에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이곳에서 진로상담 교사로 근무했어요. 이곳에서는 제 모든 과거를 숨기고 싶었어요. 물론 남편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일하는 것이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왠지 불편했어요. 그래서 수원에 있는 마약퇴치운동본부에 연락을 했어요. 제가 섬길만한 일이 뭐 없을까 해서요. 결혼하기 전에 사는 게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인터넷에 마약을 검색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경기도 마약퇴치운동본부를 알게 됐어요. 그곳에서 가끔 약물 중독자 모임에 참여하면서 상담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무기력증, 우울증, 대인기피증, 실어증도 있었어요. 마트에서 라면을 사야 되는데 얼마냐고 입이 뗄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다닌 거예요.”

–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어떤 일을 섬기게 되신 건가요?

“자녀 출산 이후부터 운동본부에서 약물에 대해 강의를 했어요. 그곳에서 한 자매를 알게 됐어요. 고시원에서 혼자 사는 자매였는데, 칼을 가지고 다니더군요. 망상 때문에 누가 죽이려고 하니까 칼을 들고 다닌 거였어요. 나이가 스물 네다섯 정도였는데 무섭더군요. 그때 우리 아이가 한두 살 때였는데 그 자매를 나몰라라 할 수 없었어요. 서울에서 강의를 마치고 그 자매를 수원까지 데리고 왔어요. 그때는 제가 복음 앞에 한창 뜨겁게 반응할 때여서 그 자매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어요. 남편에게 전화를 했어요. ‘여기 자매 하나가 있는데, 어디 갈 데가 없다. 그냥 돌려보내면 마약을 할 것 같다.’ 남편이 흔쾌히 데려오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집이 수원이었는데, 그 자매를 15평짜리 우리 아파트로 데려왔어요. 그렇게 그 자매를 데리고 같이 살기 시작했어요. 그게 첫 사역이었어요.”

– 그렇게 첫 사역이 시작된 거군요. 일단 함께 사는 게 사역의 주된 일이겠네요.

“누가 출소하면 또 같이 데려다가 우리 집에서 같이 생활을 했어요. 그때는 풀뿌리교회를 섬겼기 때문에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풀뿌리교회와 함께 그 자매를 데리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러 다니고 했어요. 처음 왔던 자매는 재발이 돼서 떠났는데, 그러면 또 다른 자매가 오고 그랬어요. 당시 풀뿌리교회 지체들이 마약 중독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어요. 한 전도사님은 마약 할 때, 맹물같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마약을 할 때 아무 느낌이 없었다는 간증이 있을 정도였어요. 저는 마약은 복음의 능력으로 끊을 수 있다고 확신해요. 제가 강의할 때는 마약이라든지, 주사기라든지, 참새가 방앗간을 못지나가듯, 약물 경험이 있는 여러분들은 반드시 마약을 봐서도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주님은 복음이 있는 저에게 마약을 봐도, 주사기를 봐도 아무 갈망이 오지 않게 하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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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최경희 센터장 제공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 “마약이 맹물 같게 해주세요”

– 정말 복음이 능력이군요. 정말 중독재활치료가 복음 중심이 돼야겠습니다. 지으신그대로 센터가 해야 할 사명이 막중하네요.

“네. 이 센터가 생기기까지도 주님이 몰아치듯 일을 해주셨어요. 하나님이 저를 약물 중독 사역으로 반드시 쓰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제가 마약 중독자들에게 강의만 하면서 내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주님의 뜻이 중독 사역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전국 구치소에 다니면서 강의를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어요. 여자 재소자들이 출소를 하면 갈 데가 없어요. 그러다 보면 또 재발을 하거든요. 우리나라는 교도소에 들어간다고 해도 마약을 끊을 순 없어요. 뭔가 치료를 받아야 되거든요. 그러다 제가 한 가지 기도를 하게 됐어요. ‘내가 마약중독 재활센터를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마약’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이름으로 재정을 헌금해주시면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마약 중독 재활센터’라고 써서 10만 원을 누가 헌금해주셨어요. 이것을 사인으로 받았어요. 그런데 사실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암담한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우리가 목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기적같이 센터 장소가 허락이 되면서 개소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 현재 우리나라 마약 중독 상황이 어떤 상태인가요?

“우리나라는 이미 마약 청정국이 아니에요. 마약 청정국은 인구 10만 명 당 마약류 사범이 0.2%인 20명 이하의 나라를 그렇게 불러요. 그래서 국내 인구 5000만 명을 기준으로 1만 명이 넘어가면 이미 청정국이 아닌 거죠. 예전에는 특정 층만 마약을 했다면 지금은 유학생, 정치인, 연예인, 가정주부들까지 하고, 그리고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어요. 저번에는 기소유예 교육을 갔는데 10대 소년이 와 있더군요. 병원에는 17세 아이가 필로폰을 해서 입원해 있더군요. 약물 중독은 뇌에 질병이 발생하기 때문에 뇌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런데 약물 중독자들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게다가 이런 약물 중독 치료하는 병원들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수도 적어요. 치료를 받으면서 케어를 받아야 마약을 안하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오로지 하늘의 가치관의 변화, 존재의 변화, 복음밖에 없어요.”

10대 청소년 마약 중독, 급격히 증가

– 그렇군요. 우리나라도 마약중독 문제가 매우 심각하군요.

“일시적으로 6개월, 1년 마약을 끊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러나 처음에는 약물에 대한 갈망이 너무 강해서, 복음으로 무장하고 복음을 듣고 하늘의 가치관으로 살면서 이겨내야 해요. 10년 동안 마약을 끊었다고 해도 땅의 가치관으로 살면 결국 마약을 하게 돼요. 자기 쾌락을 쫓아서 사니까요. 외국에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갔을 때 당연히 유혹에 빠질 수 있죠. 참 주인이 바뀌지 않으면 마약은 절대로 끊을 수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면 끊을 수 없어요. 늘 복음 안에서 살아야 돼요. 복음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센터에서 어떻게 중독자들을 케어하고 계시나요?

“마약 중독된 친구들은 낮과 밤이 바뀐 인생을 살아요. 그래서 가장 먼저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해요. 우리 센터에 오면 아침 7시에 무조건 성경을 읽고 묵상을 나눠요. 이 친구들이 성경을 언제 접해봤겠어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더군요. 내가 오늘 읽었던 것 중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한번 나눠보자. 뭔지 잘 모르지만 깨달은 거 있으면 나눠보자고 시작을 해요. 이후에는 성경 10장을 소리 내서 통독해요. 다 읽으면 단톡방에 올려요. 그리고 산책을 가요. 마약을 할 때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정상보다 1300배 방출돼요. 그러니까 이건 차원이 다른 쾌락이에요. 그래서 반드시 운동을 해서 도파민이 분비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해요. 이후에는 중독 재활센터에서 개인 상담을 하고, 병원에서 외래 치료를 받고 돌아와요. 저녁이 되면 밤에 자기 전에 모임을 해요. 하루에 어떻게 지냈는지, 아침에 묵상한 말씀으로 주님이 나에게 행하셨는지 나눠요. 이 친구들은 주님이 행하신 일이 뭔지 잘 모르잖아요. 그래도 툭툭 던져보는 거예요. 이게 주님이 행하신 일인가? 이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진 게 맞나? 주님이 인도해주실 것을 믿으며 순종해나가는 거죠. 그리고 저녁에는 핸드폰을 수거해요. 밤에 주로 약물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거든요. 얼마든지 인터넷 검색해서 마약을 하러 나갈 수 있거든요.”

– 한국교회가 중독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계속 복음을 듣게 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해 주는 게 필요해요. 이 친구들은 갈 데가 없어요. 혼자는 절대 마약을 끊을 수 없어요. 복음을 계속 듣게 하고 함께 생활해주는 게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입소시설이 극소수에요. 남자 입소시설은 몇 개 있는데 보통 5~6명 입소해 있어요. 여성 입소시설은 우리가 유일해요. 이런 시설들도 나라에서 지원을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두 사비로 하죠.”

– 지으신대로 센터도 사비로 운영되는 거군요.

“저희도 지금 시작 단계여서 남편과 둘이서 이 센터를 운영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어요. 제가 강의를 계속 나가야 되고, 센터와 집이 분리돼 있다 보니까 함께 잘 수가 없어서 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죠. 복음으로 무장되고 이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섬겨줄 사람이 필요해요. 상황은 불가능하지만, 주님이 하시겠지라는 믿음으로 무작정 시작했기 때문에 믿음이 흔들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이 친구들이 마약을 너무 하고 싶다고 말할 때는 정말 힘들어요. 하나님이 하시겠지라고 해도, 한 달 살고 나면 우리가 너무 욕심 부린 거 아닌가? 남편에게 내려놓자고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그러면 꼭 어디서 재정이 들어와요.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것 같은 거죠. 그렇게 지금 하루하루 가고 있는 거예요.”

“센터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도울 사역자가 필요해요”

-기도제목 말씀해주세요.

“제가 복음으로 재무장돼야 할 것 같아요. 매순간 복음을 누리는 게 뭔지, 다시 한 번 복음으로 재정비됐으면 좋겠어요. 완전히 저라는 존재가 사라지면 좋겠어요. 이 친구들 만나서 상담하고, 센터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한다는 것은 내가 완전히 없었을 때 오직 주님이 하셨을 때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매순간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복음으로 살려면 제가 기도로 살아야 되는데 그러기에는 제가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또 한 가지는 이곳에서 함께 섬길 사람이 필요해요. 저는 지금 서울과 지방으로 강의를 다니고 있는데, 제가 없을 때 남편이 자매들을 케어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없을 때, 이 자매들을 붙들고 기도라도 해줄 한 분이 계셨으면 좋겠어요. 약물 중독은 뇌질환이 있기 때문에 이 친구들에게는 한 얘기를 계속 반복해서 얘기해줘야 하거든요. 옆에서 붙어서 안내도 해주고 함께 기도해줄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어쨌든 공간을 주님이 주셨으니 사람도 주시겠죠.”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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