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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기 많던 내가 이제 십자가 능력으로 살아요” – 신병철, 김명자 교육선교사

▲ 십자가 능력으로 달려가는 신병철, 김명자 교육선교사. 복음기도신문

신병철, 김명자 교육선교사(헤브론원형학교)

306호 | 사람풍경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소망이다. 그러나 죄와 피흘리까지 싸우며 십자가의 생명을 만나게 길은 만만치 않다. 이를 위해 ‘강도높은 훈련을 받아야 살 수 있다.’고 고백하며 십자가의 능력이 자기 것이 되기까지 포기치 않는 순종의 걸음을 걸어온 신병철, 김명자 선교사를 만났다. 다음세대를 선교사로 양성하는 헤브론원형학교의 교육선교사로 헌신한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신병철(이하 신): “다음세대 선교사를 양성하는 헤브론원형학교를 섬기고 있는 교육선교사 신병철입니다.”

김명자(이하 김): “남편인 신병철 선생님과 두 아들 정윤, 정인이의 엄마이자 헤브론원형학교 교육선교사로 섬기고 있는 김명자입니다.”

– 두 분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신: “저는 하나님을 모르는 집안에서 자랐어요. 어머니는 토속 신앙을 믿으셨고 뭐든지 빌었어요. 큰형님이 군대에 가면 밥 굶지 말라고 밥그릇도 올려놓고 빌고, 돼지가 죽으면 더 이상 돼지가 죽지 말라고 또 빌었어요. 그리고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 즐기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30세 무렵 교회에 가게 되면서 너무나 기뻤어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세상을 떠나시는 어른들을 보면서 생각했죠. 내가 죽으면 나는 영원히 사라지는구나. 내가 사라져도 이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는구나. 나는 사라지지만 이 세상은 아무 일도 없이 그대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두려웠어요. 그런데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고 천국이 있고, 영원한 삶이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쁜 소식을 만나게 됐어요. 그렇게 교회에 나가면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김: “저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어요. 왠지 모르게 교회가 너무 좋았고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다는 게 큰 위로가 됐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생각하며 청년 때는 특수아동교육을 배우고, 교회에서는 장애아동들을 섬기는 간사로 사역했어요. 결혼 이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 전도도 열심히 했지만, 복음을 만나고 보니 그 모든 일의 원동력이 ‘나의 의’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계속 기쁠 수가 없었던 것이었어요.”

죄를 이길 힘이 없는 나에게 절망하다

– 교육선교사로 헌신하기 이전에는 어떤 삶을 사셨는지 궁금합니다.

신: “저는 형님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다녔어요. 낮에는 일하고 야간에 강원대 토목공학과에서 공부했어요. 학교는 6시에 시작해서 10시 정도 끝나는데, 끝나면 모여서 술 마시러 가는 분위기였어요. 모두 술을 잘 마셨어요. 그때 저는 “하나님 믿습니다.” “술 안 먹습니다.” 하면서 신앙을 지켰죠. 주위 사람들이 “술 안 먹고 어떻게 여기서 막노동하려고 그래.”라고 핀잔을 줬어요. 그래도 저는 술을 안 먹었어요. 그렇게 3년 공부를 마치고 이제 현장에서 대리인으로 일하게 됐죠. 그런데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접대를 해야 되는데, 버티다 버티다 한계가 오면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어요. 물론, 예수님을 믿기 전보다는 10분의 1정도 수준이었어요. 그래도 술을 한 번 마시면 죄를 계속 짓는 거예요. 비참했어요. 나는 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은데 죄를 이길 수 없는가? 또 교회 다니는 지체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상황만 되면 제가 참지 못하고 폭발을 해버리는 거예요. 그 한순간 때문에 모든 관계가 틀어졌어요. 생각으로 살인하고 미워하면서 계속 괴로워했어요. 하나님 말씀이 내 안에 있고, 내 행동이나 생각이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통제가 안되는 거예요. 죄를 이길 힘이 나에게 없었어요. 갈급한 마음에 혼자 기도원을 찾아다녔어요. 금식하면서 기도했지만 술 담배를 못 끊었어요. 그러다 마지막 한 기도원에서 3일 금식 기도를 하고 내려왔는데 말씀을 더 알고 싶었어요. 말씀을 배우고 싶은 갈망이 일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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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브론원형학교에서. 신병철 선교사 제공

–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 같네요. 이후에 어떻게 되셨어요?

신: “성서신학원에서 평신도 사역자를 세우기 위해 2년 동안 신학을 가르치는 과정이 있다고 들었어요. 거기 나오면 전도사도 할 수 있고 신학대학교 3학년에 편입해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 신학원의 모집 요강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그렇게 2년 동안 신학을 배우게 됐어요. 그런데도 죄를 이기면서 산다는 게 불가능했어요. 그러다 신학원에서 알게 된 한 분이 복음학교를 소개했어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살고 싶으면 가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2013년 9월에 복음학교에 참여하게 됐어요.”

– 죄의 문제가 복음학교에서 해결 됐나요?

김: “그것은 제가 말씀드릴게요. 남편이 복음학교에 다녀오더니 달라졌어요. 남편은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일단 화부터 냈어요. 그런데 복음학교 다녀오고 나서 화를 안 내는 거예요. 그게 한 번이 아니라 몇 번 그런 걸 본 거죠.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느 날 남편이 저에게 복음학교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나중에는 직장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꼭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제가 남편에게 부탁하는 경우는 있어도 남편이 저에게 부탁하거나 권유한 적이 없었어요. 뭐가 있나 보다 생각이 들어서 저도 복음학교에 참여하게 됐어요.”

– 두 분이 복음학교에 참여하신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신: “죄를 이길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자로 살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복음학교를 주관하는 순회선교단에서 하는 6개월 합숙 훈련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먹고 사는 것보다 영생의 문제가 제게 더 컸어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주님이 휘몰아치듯 저를 빈틈없이 이끌고 가셨던 것 같아요. 제가 계획을 해서 왔다면 절대 못 왔을 것 같아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사관학교 훈련을 받게 됐어요.”

김: “남편이 복음사관학교 간 사이 저도 중보기도학교 훈련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저도 복음사관학교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곳에 가면 뭔가 다 잃어버릴 것 같아서 가기 싫었어요. 그러나 꿈을 통해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너무 선명하게 알게 해주셨어요. 그리고 새벽기도에서 예레미야 1장 말씀을 묵상하는 데 바로 알겠더군요. 주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시는데, 예레미야는 ‘나는 아이라. 말을 할 줄 모른다.’고 말했어요. 그 모습이 나는 안 된다고 말하는 지금 제 모습과 똑같은 거예요. 주님이 우리 가정을 부르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죠. 이후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복음사관학교 원서를 내고 은혜로 훈련을 받게 됐어요. 훈련을 받으면서는 너무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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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신병철 선교사 제공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초대받다

– 복음사관학교 이후에 주님의 인도하심이 궁금합니다.

신: “훈련을 받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내 안에 욕구를 따라갔어요. 훈련을 받지 않으면 저는 세상을 이길 수 없는 거예요. 지금 이런 내 상태로 다시 밖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면 어느 순간 나는 또 그 죄 가운데 넘어져 이길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스스로 판단했을 때 아직도 혈기가 있어서 저는 말씀과 기도가 있는 곳에서 더 훈련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헤브론원형학교에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었어요. 가끔 학교를 방문하면서 여기에는 말씀과 기도, 예배가 있으니까 이곳에서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마침 선교사 파송단체인 요셉의창고에서 6개월 훈련을 받고 해외로 한번 나가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저는 지금 아직 혈기가 있기 때문에 해외에 나가면 안 된다. 말씀과 기도로 훈련을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헤브론원형학교에서 섬기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2016년 2월에 아내와 함께 헤브론에 와서 저는 학교 관리부에, 아내는 주방에서 섬기게 됐어요.”

– 학교를 섬기시면서 어떠셨어요?

김: “저는 결혼해서도 밥물도 잘 못 잡았어요. 남편이 김치찌개, 된장찌개 끓이는 법, 밥하는 법을 전부 가르쳐줄 정도였어요. 저는 9남매 중 막내로 자랐기 때문에 요리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요. 그런 제가 주방으로 가야 한다니까 덜컥 겁부터 났어요. 차라리 밖에서 돈을 벌라면 낫겠는데, 주님이 주방으로 부르셨으니 거부할 수 없었어요. 어쩌면 내가 원하지 않는 그곳으로 주님이 불러주셨으니, 나의 옛 자아를 확실히 부인하고 십자가가 실제되는 자리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주방을 섬기면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이 시간이 저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어요.”

신: “제가 복음이 실제 된 것은 헤브론원형학교에 와서였어요. 처음 온 한 달은 천국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곧 관계 싸움이 시작됐어요. 한 번은 한 선생님과 우리 자녀 문제로 갈등이 생겼어요. 아내는 울면서 어려운 마음을 제게 나눴어요. ‘아니,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냐. 그냥 혼자만 알고 있지.’ 그렇게 말했지만 그때부터 마음속에 씨름이 일어났어요. 너무너무 마음이 어려웠어요. 나는 그때 주님 사모하는 마음에 무엇을 하든 천국이었거든요. 그런데 제 말이 통제가 안 되는 거예요. 만나서 얘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 고민했어요. 그러다 아침 예배 때 그 선생님과 마주치게 된 거죠. 제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니까 얘기 좀 하자고 했어요. 사실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이었지만, 그때는 격한 감정으로 대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욕해 본 건 처음이에요. 내가 복음사관학교 협력간사까지 하고 왔는데 이렇게 심한 표현을 할 수가 있나. 속으로 자책이 됐어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그때 한 선생님이 와서 말렸는데, 제가 털썩 주저앉았어요. 완전히 황당한 거예요. 교육선교사로 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제 행동이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이제 끝났다. 이제 보따리 싸서 가야겠다. 황당해 하고 있던 그때 그 선생님이 보낸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본 거예요. 너무 죄송하다는 얘기였어요. 저야말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죠. 너무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렇게 수습됐어요.”

– 어려운 일이 많으셨군요. 그 어려움들이 이제는 해결되셨나요?

신: “이후로도 여러 선생님들과 부딪침이 있었어요. 주님은 저와 인격적인 관계를 하고 싶으신데, 제 내면에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는 할 수 없으니 십자가가 결론되는 시간을 허락해주셨어요. 선생님들과 관계가 어려워져 한동안 교무실에 안 들어가고 밥도 혼자 먹으면서 비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원형탈모도 생겼어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아내에게 여기를 나가자고 했어요. 그러나 그것도 아니란 걸 알잖아요.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금식기도를 했어요. ‘주님, 저는 왜 안됩니까?’ 치열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제가 주님 뜻대로 살기를 소망한다고 기도했던 응답이 바로 이곳이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십자가의 도를 깨닫다

– 주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군요.

신: “제 존재 자체가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까 너무 외롭고 비참했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과 복음스터디를 하고 오스왈드 체임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다보니 주님이 늘 말씀해주셨어요. ‘나는 너와 인격적인 교제를 원한다. 내가 허락한 이 상황과 사람은 실제가 아니다. 허상이다. 복음 안에서 십자가 생명이 실제 되기 위해 내가 이 사람들을 너에게 보냈고 이 상황을 허락했다.’ 그러면서 ‘나는 너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상 306호에 게재>

“이전에 복음사관학교를 섬길 때 ‘집사님은 십자가를 모른다.’는 말을 듣고 매우 화를 낸 적이 있는데, 제가 진짜 십자가를 모르고 있었더군요. 그때부터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대해 조금씩 깨닫게 해주셨어요.”

– 어떻게 십자가를 깨닫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실제로 경험하신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그즈음, 둘째 아들 정인이가 허리로 가는 척추에 지방이 유착돼서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 왔어요. 그런데 아이가 수술을 안하기로 결단했어요. 저도 아이를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침 금식기도를 시작했어요.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제 안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문제를 주님께 올려드리며 기도했어요. 결국 기도가 저를 살리더군요. ‘내 삶에 십자가가 능력이 되게 해주세요. 십자가 능력이 안 되면 아무리 복음을 외쳐도 헛거에요. 자존심 하나 때문에 누구 한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로 계속 비판하고 판단하면서 내가 무슨 복음을 안다고 할 수 있나요. 십자가가 제게 능력이 안 되면 저는 아무런 의미 없는 삶이에요.’ 아침마다 금식 기도를 하며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는데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악’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내가 정말 예수님을 만났다면 나는 찢어진 빵같이, 부어진 포도주와 같이 그렇게 돼야하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존 맥아더 목사님 주석을 읽게 됐는데, 거기에 온유를 이렇게 정의했더군요. ‘십자가는 내가 타인에게 어떤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다.’ 이걸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십자가 사랑과 기준으로 보면, 정말로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이 가장 큰 죄라는 마음을 자꾸 주셨어요. 저는 감정이 상하면 혈기 내고 분노하고 비판했는데,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아침 금식을 하는 동안 주님은 계속 상황을 통해 돌이키게 하시고 십자가가 실제 되는 과정을 허락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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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자, 신병철 선교사. 복음기도신문

– 십자가가 실제 됐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신: “권위자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제 옛자아는 나에게 공정하지 못하게 대한다는 인식을 하는 순간 미움으로 돌변해78요. 그러면 그분을 위해서 기도를 해요. 하나님이 내게 분별할 수 있는 영을 준 것은 누구를 비판하라고 준 게 아니라 기도하라고 주셨다고 생각해요. 같이 계신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오늘 하루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존중할 수 있도록 제 마음에 성령께서 일해 주시길 기도하죠. 그러면 기도하는 가운데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게 돼요. 어떤 관계 안에서 섭섭함 마음조차 생기지 않을 때도 있어요. 내가 그렇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게 아니고, 다만 주님이 계속 기도하면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살 수 있게끔, 내가 섬길 수 있게 하시죠. 내가 잘하고 못하고 이런 걸 떠나서 있는 모습대로 순종할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를 통해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일해 주시죠. 내가 없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삶이죠.”

– 앞으로 계획과 기도 제목 말씀해주세요.

신: “우리 가정이 헤브론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약속의 말씀이 빌립보서 1장 20~21절이에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주님이 우리 가정 안에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하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어요. 우리 가정 안에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는 게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삶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게 뭐가 있냐? 아무것도 없다. 한 가지가 있다면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께 맡기는 그거 말고는 없는 거예요. 주님 뜻이 내 뜻이 되고 내 뜻이 주님의 뜻이 되게 해주시는 거예요.”

김: “주님 따라가는 이 걸음이 가장 완전한 거니까, 순종하면서 행복한 선교사로 나아가는 게 기도제목이에요. 또 큰아들 정윤이가 헤브론을 졸업하고 지금은 교육선교사가 됐어요. 한 학기 동안 태국에 가서 아이들을 섬기는데, 거기서 열방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좀 더 알고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요. 그리고 진짜 영혼을 사랑하는 선교사로 주님이 다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둘째 정인이도 교육선교사로 함께 하고 있는데 더 이상 건강 문제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님이면 충분한 자로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 완성을 위해 달려가는 행복한 선교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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