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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GTK 칼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 Part 2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사진: 유튜브 채널 Christina Yeo 캡처

십자가 보혈로 값을 치르셔서 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는 나의 주님. 나는 주의 노예! (δοῦλος[Doulos, 둘로스]

로마시대의 노예제도 이해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노예.. 근데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요. 노예라고 하는 건 부담스러운 메시지 아닌가요? 믿기 힘든 메시지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약성경이 쓰일 당시 로마시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시대에 이 메시지는 아마 믿기 불가능한 메시지였을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의 5분의 1이 노예였습니다. 전쟁 포로들, 속국의 노예들, 수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국적불문 로마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제도가 노예제도였습니다. 아무도 이 노예제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리에서 시위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러운 사회구조였습니다. 대 로마제국이 이 노예제도에 의존하고 있었고 노예인구만 추산 약 1200만 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습니다. 노예들도 종류가 많았습니다. 여러 기술이 있는 노예들은 자신들의 기술로 일을 했습니다. 요리하는 기술, 집을 관리하는 기술, 심지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술, 혹은 여러 육체노동의 기술들,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들, 집에서 상주하는 똑똑한 노예들은 주인들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예의 인생은 주인에 따라 극명히 갈립니다. 좋은 주인 아래 있는 노예는 먹을 걱정, 집 걱정 없습니다. 여러 가지 혜택과 관리와 보호를 받으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갑니다. 주인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거나 명망이 높은 주인이면 노예도 그만한 가치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악한 주인이면 그 노예의 인생도 비참해집니다.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는 일상이며 비극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노예제도를 비유로 사용하셨다?

성경은 노예제도 자체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노예제도를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노예제도가 있다는 사실만을 인식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미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은 어떤 형태의 학대나 착취, 불의를 정죄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것을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노예를 부리는 그리스도인 주인들에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령합니다. 빌레몬서에도 보면 같은 형제 된 그리스도인 노예를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바울의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갈 3:28에 종이나 주인이나 모두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성경은 노예제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서 오셨다면 완전히 실패하셨습니다. 노예제도는 예수님 당시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포함해서 신약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을 감동하셔서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묘사하는 가장 압도적인 이미지로.. 주인과 노예를 비유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노예제도를 비판하시지도 칭찬하시지도 않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실 때 정말 많은 예시로 그 당시 있었던 노예제도를 사용하십니다. 주인과 노예가 나오는 비유가 많습니다. 포도나무 품꾼, 주인의 재정관리를 맡은 노예들의 비유인 달란트 비유. 가정사를 돌보는 노예의 비유…..

그 당시 노예제도에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바로 노예들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모든 노예들에게는 똑같은 인생 목표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주인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주인에게 충성되게 복종하는 것! 그게 노예의 존재의 이유였습니다. 좋은 주인이건 나쁜 주인이건. 모든 노예들은 자신의 주인에게 절대적인 충성과 기쁨이 되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서 여러분의 삶의 목적입니까? 여러분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여러분의 주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주님이세요? 좋으신 주님입니까? 여러분의 주님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대해주셨나요?

나를 구원하신 나의 주님!

여러분은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로마시대 때도 질 나쁜 주인에게 소유된 노예들은 학대와 고통을 당하고 동물 취급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기 전에 여러분의 주인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주인이었어요. 여러분의 주인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죄’였습니다.  

죄는 여러분의 영혼을 오염시킵니다. 죄는 한 영혼을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온몸에 퍼진 나병과 같이 죄로 덮여있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영혼의 질병은 절대로 치료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더 최악인 것은 단순히 죄의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죄의 완전한 노예였다는 사실입니다.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서 죄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기록된 육체의 일들 곧 음란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자유의지? 그 속박안에서 죄만 저지를 수 있는 의지입니다. 절대로 선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아, 그래도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착한 일도 많이 하지 않나요?’ 아니요. 말씀은 다르게 말합니다. 

사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

죄 가운데 행한 ‘소위’ 선한 일들도 다 내 영광을 위한 악행이었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육신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상태였습니다. 

아무런 소망 없이 그냥 영원한 파멸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죄의 노예로 살면서 비극이 비극인 줄도 모른채… 그런데 그 죄의 노예 시장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노예는 주인을 고를 수 없습니다. 주인이 그냥 값을 내고 사는 겁니다. 그 죄의 노예시장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을 위해서 값을 지불하셨어요. 그 노예는 이미 영원속에서 예수님이 택하신 노예였습니다. 정확히 그 노예에게 오셨습니다. 

아직도 혹시 여러분 중에 노예?라고 하면 아직도 좀 기분이 불편한 사람이 계시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빌2:5-8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노예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만물의 창조자 예수님께서 스스로 노예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죄의 노예에 있는 나를 위해서! 영원에서 택하신 그 노예에게 오신 겁니다. 그리고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 값은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리고 나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죄의 노예에서 해방됐어요!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풀렸어요! 그리고 나를 거룩하게 성별하셨습니다. 내 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신 의가 나에게 덧입혀진 겁니다. 복음을 통해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의롭다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새로운 주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롬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노예가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노예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노예가 되었느니라”

기뻐하는 노예

그렇다면 이제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사신 주님이 어떤 존재이신지 내가 누구의 소유인지 올바로 이해하신다면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히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그리고 내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안다면 예수님의 노예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의 삶은 무한한 영광의 삶입니다! 

로마시대 때 주인의 지위나 명예에 따라서 노예도 같은 특권을 누렸다면 노예의 관점에서 가장 최고의 영예를 가진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누구의 노예가 그 당시에 노예 중에서 가장 최고의 영예와 영광을 누렸을까요? 

바로 로마 황제의 노예들이었습니다. 가장 높은 권력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칭송을 받던 황제의 노예에게는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노예라면 어떻습니까? 주님은 죄에 노예로 팔렸던 나를 낮추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한없이 가장 최고의 자리로 높여주신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나를 높여주셨어요. 자랑스러워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것을 자신의 최고의 자랑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입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빌1:1 그리스도 예수의 노예…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후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입니다.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노예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예수님의 노예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는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동생이었으면 엄청난 특권, 자랑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약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또 야고보서 4장에서 야고보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노예의 언어입니다. 그저 주의 뜻이면 살수도 있고 이것도 저것도 하리라. 놀랍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동생 유다입니다. 

유다서1:1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예수님의 수석 제자였던 베드로나 요한이나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나 유다나 그 위대한 교회 개척자, 위대한 전도자, 위대한 설교자, 사도 바울도 그들 모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칭송을 받았던 초대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이었지만. 충분히 ‘나는 특별해!’ 어깨를 으쓱해도 이상할 것 없는 지도자들이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소개할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모든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내 모든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영광은 오직 나의 주님이신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노예임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리고 단순한 노예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노예가 아니에요.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노예)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노예)는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내가 주님을 친구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아무도 스스로 하나님을 친구라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친구라고 불러주신 겁니다.

로마시대에도 주인과 벗이 된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선하고 자비롭고 은혜로운 주인 아래에서 열심히 충성한 노예들은 주인이 친구 같이 선대했어요. 

노예와 친구의 차이가 있습니까? 여기 구절에 나와있죠. 노예는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해요. 그냥 하라면 하는 겁니다. 노예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주인이 친구로 삼은 노예에게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주인이 하는 일을 다 알려주셨어요! 난 노예지만 주님이 날 친구로 불러주셨으니까. 주님이 하시는 일을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주님의 벗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는 단순히 주님의 친구가 아닙니다. 이제 나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기업을 무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신실한 모든 노예들을 이렇게 높여주실 겁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노예야! 이제 나의 즐거움에 참여해라!”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좌에 함께 나란히 앉아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주님의 은혜입니까?

그리고 정말 영광스러운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영원으로 가는 마지막 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처소.. 새하늘과 새땅에서

계22:3-4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노예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우리는 영원히 새하늘과 새땅에서도!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나는 주님의 영원한 노예!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영원한 주님! 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여러분, 아직도 예수님의 노예라는 말이 불편하세요? 아니길 바랍니다. 가슴벅차시길 바래요! 온 우주 만물의 최고의 주인. 나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인 안에서 보호받고 안식하고 사랑받고.. 모든 필요한 공급받고 이제는 소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 나는 주님의 노예입니다!

나는 정말 주님의 노예와 같이 살고 있는가?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잠깐 여러분의 삶을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왜 아직도 주님께 순종하는 것에 주저하십니까? 왜 아직도 우리의 자존심, 욕심, 야망, 이기심, 우리의 뜻 못 내려놓습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6:46 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여러분, 오늘 정말 기도하면서 ‘나를 이렇게 구원하시고 높여주신 아름다우시고 존귀하신 우리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길 원합니다’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정말 주님께 순종하는 삶 살기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그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쁨과 사랑으로 주님의 뜻을 행할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후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엡5:16-17,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그리고 우리에게 완전한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라가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성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노예의 언어입니다. 주님을 닮기를 바랍니다. 나의 뜻 꺾으시고 오직 주의 뜻대로 살길 원합니다. 

물론 우리는 넘어지고 연약하고 순종 못할 때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떠한지, 계속 회개로 나아가는지, 계속 경건의 모습이 우리 안에 나타나는지,  우리가 계속해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지.. 그게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면 나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섬기는 모든 주인은 다 내주님을 모독하는 겁니다. 우상숭배입니다. 나를 섬기지 마세요. 돈이나 명예나 세상에서의 성공을 섬기지 마세요. 음란 섬기지 마세요. 우리 주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라가시길 바랍니다. 

글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절박한 심정으로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여전히 죄의 노예로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혹시 있습니까?

마지막 날에 이런 날이 오게 될 것을 알려드립니다.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때 기쁨으로 무릎 꿇겠습니까? 강제로 무릎이 꿇여지겠습니까?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 강제로 꿇히고 강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 주로 시인하게 된다면 때는 늦습니다. 그 사람에게 준비된 것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영원한 불 못입니다.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겁니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아직 혹시 예수님이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 하실 사람이 있다면. 간절히 간청합니다. 여러분의 죄에서 돌이켜서 예수님께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 주님이라는 고백은… 내가 나를 부인하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죽을 각오하고 내 십자가 지고 주님만 따르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 길은 대가 지불이 있는 길입니다. 힘든 길입니다. 좁은 길이에요. 협착해서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 길입니다. 그래도 그 길 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 길 끝에 찬란한 영광이 있기 때문에! 이 안개 같은 이 땅, 잠깐입니다. 여러분, 오늘이 구원의 날이에요.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사랑 많으시고 죄를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은혜로우신 구원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복음기도신문]

박성준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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