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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소망 더하기 마음

사진: 김봄

페니나 남매와 첫 수업을 마친 이튿날 셋째 아주와이가 아빠가 줬다며 수줍게 쪽지를 건넨다.

탄자니아에서 몇 번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던 나는 순간 망설였다. 감동과 감사 설렘의 마음보다 과연 그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라는 못된 편견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다정한 미소를 짓고 설레는 표정으로 나에게 편지를 건넨 이들은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애찬을 나누고 함께 전도하러 다녔던,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유대감을 형성했던 이들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들 중 한 명이 마치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첩보원처럼 나를 몰래 불러내어 혼자만 읽으라고 ‘나의 마음’이라며 편지를 건넸다.

얼마 만에 받아보는 손편지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지를 펼쳤지만 날림으로 휘갈기듯 써 내려간 스와힐리어로 쓰인 그녀의 편지는 도저히 혼자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런데 스와힐리어에 능통한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겨우 읽어낸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은 ‘어려운 상황에 놓인 나의 사정을 알고 너는 나를 도와라’ 였다.

그 뒤에도 다른 몇 명의 현지인들이 비밀스럽게 편지를 건넸다.

그들의 마음 역시 그녀와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무작정 도와줄 수 없었기에 ‘나를 도와줘’라는 그들의 노골적인 마음에 반응해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보는 것이 예전처럼 편하지 않았다. 결국, 마음을 전했지만, 마음을 받지 못한 그들은 그 뒤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고 나를 피하기도했다. 마음을 담은 손편지에 대한 그런 기억 때문에 쉽사리 편지를 받을 수가 없었다.

전날 아이들에게 나눠준 공책을 찢어 편지지를 대신한 아이들 아빠가 쓴 편지는 스와힐리어 같은 영어로 쓰여있었지만 읽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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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뜨문 겨우 해석해보니 ‘감사하다. 당신 덕분에 아이들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 어디에도 도와달라. 뭐가 필요하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저 감사와 소망뿐이었다. 순간 그를 향한 나의 편견이 미안했다. 그 미안함은 그를 향한 신뢰가 되었다.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구나. 또한, 그는 정말 성실한 사람 같았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에 관해 물으면 아이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그는 일하러 갔다. (akenda kazini) 였다. 주일조차도 그에게는 일하는 날이었다. 혼자 힘겹게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지키는 싱글맘들이 흔한 탄자니아에서 흔치 않은 성실한 가장인 그에게 나는 존경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얼마나 힘겨울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그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18살부터 10살까지 4명의 남매는 한 시간을 걸어서 매일같이 공부하러 왔다. 18살 미혼모인 큰딸 페니나는 6개월 된 딸 아이를 업고 왔다. 가끔은 6살 3살 어린 동생들도 따라왔다. 아이들은 한 번도 약속 시각을 어겨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라도 나올 기세였다. 숙제도 빠짐없이 다해왔고 오히려 더 해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열정과 열심 덕에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알파벳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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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많은 선교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봤지만 이렇게 공부에 집중하고 열심을 내는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습득도 빨랐다. 그런 아이들이 대견해야 하는데 오히려 나는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매일같이 불철주야 일을 하는 아버지가 있는데 왜 6명의 아이 중 단 한 명도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까?

18살 미혼 엄마 페니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필을 잡아본다고 했다. 난생처음 선물로 받은 공책과 연필에 아이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거 정말 우리 주는 거예요? 몇 번이나 물었다.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는 언니 오빠처럼 6살 3살 어린 동생도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 못할 것이고 곧 태어날 엄마 배 안의 아이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형편이 좋지 않아 모든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해도 한두 명은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럼 남은 아이들이 상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아예 모든 아이를 공평하게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겨우 알파벳을 알게 된 것뿐인데 아이들은 스와힐리어로 쓰인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10살 조지는 군인이, 11살 아주와이는 의사가, 15살 제니타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했고 아빠없는 6개월을 딸을 키우고 있는 18살 어린 미혼엄마 페니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은 성경이 읽고 싶다고 했다.

평생 문맹으로 살지도 몰랐을 아이들의 소망을 듣게 된 나에게도 소망이 생겼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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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그의 아버지에게 제안해볼 요량이었다. ‘내가 돕겠다. 시기를 놓친 큰 아이들은 둘째 치더라도 아주아이 조지 소스피아부터 보내자. 막둥이는 유치원에 보내자.’ 도와달라고 마음을 보였던 이들이 받고 싶어했던 마음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들의 아버지는 일해서 번 돈 대부분을 술을 사서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가족들 하루 치의 식량은 남겨둔다는 거. 아이들에게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거나 하지 않는다는 거. 아이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용납한다는 거.

하지만 그는 곧 태어날 아이까지 7남매의 아버지와 아비 없는 손녀의 할아버지로 살아가기에는 그는 무력했고 희망이 없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술을 끊고 아이들 학교를 보내라!! 정신 차려라!!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라!! 훈계하고 싶었지만, 그의 인생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싶었다. 술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의 인생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이가 한두 명이었다면 어떻게 시도를 해볼 수도 있었겠지.

곧 한국으로 다시 떠나야 하는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알파벳을 알게 된 아이들이 단어를 문장을 그리하여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고 하나님 안에서 꿈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과외교사라도 필요했다. 그런데 어디서 당장 신실하고 성실한 과외교사를 구하겠는가?

그런 나의 곁으로 하나님은 신실한 현지 목회자의 아내 조셉피나를 보내셨다. 그녀는 내년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글자와 숫자와 성경을 가르치기로 했고 나는 아이들을 받아줄 만한 학교와 아이들의 후원자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꿈이 생긴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에 마음을 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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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감사하게 페니나의 소식을 전해 들은 지인의 남동생이 과외교사의 월급을 감당하겠다며 마음을 보내왔다. 그 마음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제 막 소망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소망이 되었다.

하나님의 마음이 더해진 그들의 소망이 열매 맺을 수 있기를 사랑의 마음이 더욱 더해지기를 기도하면서 매일 매일 나의 마음을 더한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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