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호 | 선교 통신
이슬람의 큰 절기 중 하나인 라마단 금식 기간과 이드를 지나 중동 U국은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다. 우리 가정이 이 나라에 처음 온 2012년의 라마단은 이슬람의 짙은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 개방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들의 라마단은 이들의 문화를 존중해 줄 것을 요구받았고, 이는 어느 곳에서나 피부로 와 닿았다. 차에서 몰래 숨어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었던 기억과 천막으로 둘러싸인 쇼핑몰의 푸드코트가 대표적인 첫인상이었다. 이 기간에 여행하거나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그리고 그 와중에 장소와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같이 금식해야 할 정도였다.
중동 U국에서 2024년 라마단은 금식 기간이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전면 개방되었다. 길거리의 식당, 카페, 푸드코트, 쇼핑몰… 모두 정상 영업을 했다. 카페에 앉아 커피와 차를 마시는 현지인, 지역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길에서 물과 음식을 먹고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며 중동 U국이 국제화 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이슬람력에 따라서, 금, 토를 쉬던 이들의 주말도 국가 간의 금융 관련 이슈들로 인해 토, 일에 쉬는 것으로 오래전 바뀌었다.
2024년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에 깊이 발을 넣고 있는 중동 U국을 바라보게 된다. 이들의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 아라비아 상인의 상술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중동 U국 드림을 꿈꾸며 이런저런 이유로 실로 많은 나라 사람이 상륙하는 중이다.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고, 관광 상품은 날로 더해지고, 터무니없는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요는 줄지 않는다. 돈을 쓰기 위해 오는 도시! 이곳에서는 부자들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물건을 사는 것은 이미 수치가 됐다. 날로 그 화려함을 더해 가고, 먹는 것 하나에도 쇼를 보고 싶어 한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요한계시록 6장 6절 말씀이 떠오른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한 데나리온은 하루 일해서 받는 품삯인데, 하루 힘들여 번 돈으로 고작 끼니를 때울 수 있을 정도, 그런 마지막 때를 묘사한 말씀인 듯하다. 천정부지 치솟고 있는 물가, 24년 만의 최대 상승, 78년 만의 폭우, 최대 강수량, 한 주에 백만 원을 넘는 집세, 사막 기후에 눈이 내리고, 폭우가 쏟아지고, 전쟁과 기근, 자연재해는 이제 일상이 됐다. 세상은 이런 가운데 권력과 물질, 성의 노예가 됐다. 폭주 기관차처럼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요리사로 생활하며 먹고 마시는 중심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 이들의 소비 풍조와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내 가정 한 달 품삯을 하룻저녁에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직원에게 주는 품삯을 줄이고자 휘두르는 힘에 갈 곳을 잃는 직원들이 생겨난다. 이삭이 힘들여 파 놓은 우물을 빼앗긴 것처럼, 이 땅에서 힘들여 파 놓은 내 우물을 빼앗기기 일쑤이다. 열정과 노력 그리고 상실과 낙담, 이 패턴이 매년 반복되며, 나무처럼 내 안에서 나이테가 하나둘씩 원을 그리며 생겨난다.
법적으로 포교 활동이 금지된 이곳,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남모르게 외쳐야 하는 상황, 이들의 거만한 시선, 뜨내기처럼 이곳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 그래서 우리는 한 곳에 모여 같이 일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모두 흩어져 다른 곳으로 가기 일쑤이다. 어디를 가나 언제나 한국 사람은 나 혼자였고 그래서 곤란한 일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래도 한 입에서 단물과 쓴 물을 낼 수 없으니, 사람들에게 욕하지 말고 존중의 언어를 쓰자 결심했다. 몸에 문신하고, 말의 반은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요리사들을 관리하는 일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중에 진심이 닿는 친구들과 모임을 시작했다. 주방에서 욕설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상냥해진다. 내가 존중한 만큼 나도 존중을 받는다. 열심히 가르치고 팀을 만들면 이제 우물을 빼앗길 차례가 돌아온다. 그럼 내 안에 나이테 하나가 또 그렇게 생겨난다.
전도가 일어나고 교회가 세워지는 부흥의 선교도 있지만, 많은 나이테를 그려야 하는 선교도 있나 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6) 나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닌 이 생명들이 이 말씀처럼 살아났으면 한다. [복음기도신문]
서OO/이OO 선교사
(중동 U국)_바울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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