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이아침 칼럼] 회개가 쉬워지면 은혜가 임한다

사진: Jon Tyson on unsplash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난 죄목은 22절입니다.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표적 속성은 전지전능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없다는 것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우리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꿈꾸고 있고, 어떤 의도가 있는지, 어떤 것을 회개해야 하고 무엇을 고집부리고 있는지 아십니다.

그래서 시원해졌습니다. 이미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회개가 쉬워졌습니다. 들킬까 봐 숨고, 감추고 하는 수치감에 파묻히지 않습니다. 두려운 것도 있습니다. 선한 것으로 위장할까 봐 그렇습니다. 돌이키는 힘이 무엇인지, 그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처럼 되었다는 것은 전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성도 아닙니다. 전지성도 없고 전능성도 없으면서 하나님 행세를 하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거기에 하나님의 저주까지 있으니 인간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창조론자와 진화론자가 논쟁하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창조론 관점으로 6천 년 정도 됩니다. 진화론 관점으로는 수억 년이 나옵니다. 믿음 안에 들어오면 논쟁할 일이 아닙니다. 이 강대상을 오늘 만들었다 해도, 이 강대상의 재료는 오래된 것일 수 있습니다.

한 장로님이 금강송으로 정자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금강송이 최소한 500년 됐다고 말합니다. 정자를 만든 재료가 천년 된 금강송이었다면 천년 된 것입니다. 천지를 만드실 때 25억 년 된 재료로 만드셨다면 25억 년 전 것입니다. 그것을 왜 논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으로 하늘, 바다를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당신의 형상도 집어넣으시고 당신의 성질까지도 집어넣으시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처럼 됐다는 의미는 전능성이 아닙니다.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판단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전지성도 없고 전능성이 없으면서도 하나님처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처럼 된 것이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제가 죄인 중에 상 죄인이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판단했는지! 칼질하고, 정돈하고, 구분하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네가 나처럼 됐다는 그 사람이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여러분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라는 말처럼 어처구니없는 말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 1:8)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하면 망합니다. 잠언에 ‘스스로’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스스로 지혜로운 자, 스스로 문제 해결하는 자,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자, 다 망했습니다. 주님과 연합함으로 주님의 생각이 깃들어,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열려지기를 기도하며,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것을 감사하고, 그 감사가 거듭되어 사랑이 들어와 넉넉하게 주님 바라볼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 3:23)

스스로 판단하는 자리에 있었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는 에덴에서 쫓아낸 것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것은 정말 심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땀, 여러분의 수고의 총합, 여러분이 애쓰고 노력하는 총합, 그것이 에덴에는 모두 있습니다. 부교역자 때 자전거를 딸에게 사줬는데, 교회 앞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산 뒤에 바로 잃어버렸습니다. 은혜가 떨어집니다. 새 차 사고 바로 잃어버렸는데 기뻐할 수 있을까요? 크면 클수록 감당 못합니다. 에덴은 더 큰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큰 에덴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저주는 배를 땅에 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배는 욕망입니다. 우리 욕망을 채우려면 반드시 땅에 배를 대야 합니다. 흙을 먹어야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 저주입니다. 땅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저주입니다. 우리는 기쁨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존재입니다. 이 땅에서 기쁨을 못 찾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에덴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열심히 기쁨을 찾고자 애써도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기쁨을 위해 무언가를 합니다. 그토록 수고하고 애씁니다. 그러나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그렇게 속인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속아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속입니다. “거봐, 안 죽었잖아!” 하고 속였습니다. 우리 코 끝에 호흡이 남아있다고, 그래서 살아 있다고 속였습니다.

숨 쉬고 있으니 살아 있다고 속인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에덴 안에서처럼 기뻐할 수 있어! 성공해봐, 남들이 볼 때 우러러보는 삶을 살아 봐!” 사탄이 우리를 그렇게 속인 것입니다. 에덴적 환경, 그 모조품을 이 땅에서 갖추면 행복할 것이라고 속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노력해도 안 됩니다.

속은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자녀입니다. 자녀가 잘 되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통해 기쁨을 얻으려고 얼마나 수고하고 애씁니까? 수고하고 애쓸수록, 돈을 벌려고 할수록 우리 속은 탑니다. 무엇이 되려고 노력할수록 속만 탑니다. 1만 명 목회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속은 다 썩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는데 이가 다 빠지고 몸은 왜 이렇게 다 망가질까요? 제 마음에 주님이 계시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엇을 채워서 기뻐하고자 하는 요소를 봐야 합니다.

마음에 무언가 충족시키면 기쁠 것 같아서, 우리는 자녀, 재정, 상황, 환경을 계속해서 마음에 들여놓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다 쓰고, 종교적 열심을 부리고, 헌신하고 노력하는데 안 됩니다.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는 주님이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는 마음에 채워졌는데, 실상 마음에 채워진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가치가 바뀝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이 실제로 보입니다. 감각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봤다는 것은 하나님을 보니까 실제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마음에 다른 것이 들어올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고, 예수님과 연합하지 못해서 아픈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실제로 봤다는 의미가 그런 의미입니다. 그 고통과 상실을 통해, 그것이 모두 떠나가니까, 그것이 마음에 가득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비로소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

인간이 그 죄인의 모습을 알지 못하면, 에덴을 끝없이 추구하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 같지만 마음에서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에덴에 그 죄인의 모습으로 들어오면 큰일나니까 하나님께서 보호하기 위해서 불 칼을 세우신 것입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무엇을 채우려고 하나님을 찾을 때,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 깨달아야 합니다. 죄인의 모습으로는 에덴에 들어갈 수 없고, 하늘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죄가 빨리 깨달아져야 합니다. 빈말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십자가가 현실되도록 기도 많이 하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현실 되기 위해서는, 죄인이라는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전제가 없으면 잘난 척하다가 끝납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절함과 절박함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절박함이 있어도 우리는 죄를 짓고 또 넘어집니다. 그때에도 십자가로 달려가야 합니다. 죄의 속성을 이해해야만 주님을 바라보는 유익이 커집니다.

제가 ‘불멍’을 좋아합니다. 과거, 명절에 불멍을 하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울산에 가면 정유공장이 있습니다. 성석동 일대에도 아파트가 들어온다고 하는데 만일 근처에 정유공장이 들어왔는데 여기서 불멍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닥불을 지필 수 있는 환경이 되니까 모닥불도 지피는 것입니다. 큰 불멍을 보고 싶다고 정유공장에 불을 내면 어떻게 됩니까? 상상불허의 폭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불의 속성은 똑같습니다. 모닥불을 피울 환경이니까 모닥불입니다. 정유공장의 조건과 환경이라면 그 불은 감당이 안 됩니다. 원자폭탄을 불멍하기 좋다고 터트리면 어떻게 됩니까? 불의 속성은 같습니다. 환경이 다를 뿐이고 조건이 다를 뿐입니다. 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폼 잡아도 환경이 바뀌면 저는 금방 악마가 됩니다. 저는 그것을 잊지 않습니다. 지금 잘하는 것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과신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십자가입니다. 상황과 조건을 갖추면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다윗이 그랬다면 우리도 그냥 넘어집니다. 제가 설교하려면 진통이 있습니다. 진통을 없애야만 설교가 되기에 금식도 합니다. 그렇게 진통을 겪으면서 말씀을 선포하니까 그래도 저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속지 않습니다. 상황과 조건이 갖춰지면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 앞으로 갑니다. 제 안에 기쁨의 요소가 있을 때, 그것을 옳다고 여기며 제가 불에 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주님! 이것은 좀 새롭게 해주시고, 이것을 보완해주세요!” 하는 것은 죄인의 모습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돌이키고 회개해야합니다.

에필로그

믿음은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달음으로 속습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속습니다. 깨달음은 확장성이 있고 추진하는 힘을 줍니다. 정돈시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함정입니다. 돌이키고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았으면 반드시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 없는 깨달음은 어렵게 만듭니다.

다윗이 죄를 깨달았습니다. 조건이 갖춰지니 죄를 지었습니다. 밧세바를 임신시켰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죄를 깨달았음에도 열 달 동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할 지점을 가르쳐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가까운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회개하는 훈련 하세요~ 회개하는 연습해야 합니다~ 날마다 해야 합니다. 우리 존재가 그렇습니다. 우리 죄성이 그렇습니다.” 회개가 쉬워지면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회개가 쉬워지면 에덴에 들어갑니다. 저는 하나님께 소원하는 것이 있다면 딱 한 방울입니다. “주님 조금만 더 쏟아주세요! 조금만 더요” 그런데 그 한 방울도 받게 되면 정말 놀랍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바꿉니다. 용납하는 힘이 우리를 바꾸어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그 은혜가 가득 부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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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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