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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사진: TGC Korea 캡처

스티븐 차녹(1628-1680)이 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은 청교도 시대가 낳은 뛰어난 작품 중 하나이다. 신학적 거물들의 펜에서 수백 권의 방대한 저작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대였음을 고려하더라도 이 책은 대단한 성취이다. 차녹이 죽고 2년 후에 출판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미완성 상태였다. 총 14개의 담화 또는 14장이 완성되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에 관해서 더 쓰고 싶은 내용이 남아있었다. 

책이 출간되고 차녹과 책을 향한 칭찬이 줄을 이었다. 역사가 에드먼드 칼라미(1671-1732)는 신학자로서 차녹의 명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녹은 대단한 학자였다. 그가 손을 댄 학문에서는 통달하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었다. 그에게는 구약과 신약을 원어로 이해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애초에 그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확고한 판단력과 생생한 상상력의 소유자인 차녹은 거의 신적 수준에 근접한 탁월한 학자였다. 

에라스무스 미들턴(1739-1805)은 그를 “진정한 신성에 대해서 깊이와 명확성과 정확성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교회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과 섭리에 대해서 가히 비할 데 없는 담론을 남긴 저자였다.” 

영국 성공회 찬송 작가 아우구스투스 토플라디(1740-1778)도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의 위대함에 대해서 비슷한 언급을 했다. “명확함과 깊이, 형이상학적 숭고함과 복음주의적 단순성, 엄청난 배움과 평범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추론, 더불어 인간의 신성한 판단력과 천재성에 경의를 표하도록 만드는, 차마 그 가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인간이 성취한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이다.” 

조엘 비키는 언젠가 내게 청교도 시대가 이해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라도 차녹의 이 걸작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특히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담론 하나만으로도 순금에 비할 가치가 있으며 모든 영문학 작품을 통틀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책이다.” 제리 브리지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담론을 여섯 페이지 정도 읽다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압도당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잠시 후 다시 일어나서 읽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서 그는 또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혼자 남겨진 내게 딱 두 권의 책만 허락된다면, 나는 기꺼이 성경과 차녹의 걸작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 안에서 나는 매일 매일 행복하게 또 바쁘게 지낼 것이다!

평신도를 위한 신학

오늘날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각 장이 설교 목적으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도 있다. 실제 설교에서는 약간의 편집이 필요했겠지만, 오늘날 독자들이 읽는 내용은 다름 아니라 애초에 차녹이 토마스 왓슨과 함께 사역했던 교회의 성도들이 듣도록 준비되었던 내용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서, 당시 영국에 살았던 가장 재능 있는 두 신학자의 설교를 들었던 교인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의 내용이 정교하다고 해서 일반 독자가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작품이 고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다름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교리(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학자와 목회자뿐 아니라 평신도까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쓴 차녹의 능력이다. 물론 오늘날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가벼운 기독교 서적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14개의 담화에는 예외 없이 잘 알려진 성경 본문에 대한 주석이 포함되어 있다. 차녹은 각각의 주제와 관련해서 주로 가장 유명한, 일종의 표준 구절(locus classicus)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일한 주제를 다룬 개혁주의와의 연관성을 고려했다(예: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시편 14:1). 이것은 신학 교리에 대한 설교적 담론의 전형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듯이, 차녹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가진 실제적인 의미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내용 중에는 실천적 무신론에 관한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그 시기에 하나님의 존재라는 교리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고전적 이해에 대한 공격, 둘째, 마치 우리의 삶과 생각에 관심을 가진 하나님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는 인간의 현실이었다. 차녹의 작업은 이런 실질적인 문제를 아우르는 통찰력 있는 분석이었다. 더불어서 그는 입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마치 무신론자처럼 행동하는 교인이 귀를 기울여야 할 많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차녹의 작업이 초점을 두는 게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이라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를 경시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각각의 담론 전반에 걸쳐서 흩어져 있는 내용은 말 그대로 황금 덩어리이다. 하나님의 속성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차녹은 각 장의 “용도”(uses) 섹션을 통해서 하나님의 속성과 그리스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그의 관찰을 담고 있다.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적용할 때조차도 차녹이 그 내용을 그리스도의 인격에 고정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명쾌한 세련미

“용도” (또는 “가르침”) 섹션은 하나님에 관한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얼마나 실용적인지를 보여준다. 이런 식의 적용이 없었다면, 그의 작품은 바퀴 없는 아름다운 자동차에 그쳤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독자가 힘들어하는 부분은 신학책이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 반대로 실용적인 책은 신학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그러나 차녹의 책을 만나는 순간 이런 고민은 바로 사라진다.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은 신학적이면서 실용적이며, 실용적이면서도 신학적이다. 

차녹보다 훨씬 더 유명한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웬(1616-1683)과 리처드 백스터(1615-1691)는 매우 정교한 논문을 썼다. 그들의 학식은 아마도 17세기 영어권 신학자들 사이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종종 일종의 “번역가”가 필요할 정도이다. 외국어도 아닌 영어로 쓴 글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차녹의 책은 “번역가”가 필요하지 않다. 그의 글은 훨씬 더 단순하고 명확하다. 오웬과 백스터보다 훨씬 더 맥락을 따라가는 게 쉽다. 말하자면, 이 세 사람 중에서 트위터 세상에서 성공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연 차녹(과 왓슨)이다. 칼뱅이 “명쾌한 간결함”으로 알려져 있다면 (애초에 칼뱅에게는 그것이 목표였다), 차녹은 명쾌한 세련미로 유명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차녹의 언어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자신의 학식을 설교를 듣는 평신도를 고려해서 적절하게 조정했기 때문이다. 그가 사용한 은유와 비유는 자연 세계에 대한 놀라운 이해력이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닮았다(“들의 백합화를 생각하라.” 눅 12:27). 또한 그는 탁월한 르네상스인이었다. 더불어서 그가 받은 의학적 훈련은 대부분의 페이지에 나타나는 은유, 삽화 및 비유에서 빛을 발한다. 그의 성경 주석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탁월한 통찰력 때문이다. 차녹이 소유한 하나님에 대한 학식 있는 이해를 통해 독자는 은혜를 입은 상태에서조차도 인간 영혼의 심연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죄악된 특성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큰 책 그리고 크신 하나님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왜 읽어야 할까? 차녹이 살았던 시대와는 다르게, 20세기는 하나님에 관한 교리에 있어서 결코 위대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관해서 비정통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 아마도 형편없거나 부적절한 가르침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었을 것이다. 치료는 강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강단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개인 또는 그룹 연구를 통해서도 치료가 일어나야 한다. 

차녹의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이 다시 출간됨에 따라서, 이제 목회자들은 시간을 뛰어넘는 이 고전에 더욱 쉽게 접근하여 자신의 설교를 다시금 조명하도록 돕는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J. I. 패커가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마틴 로이드 존스에게 했던 최고의 칭찬은 그가 하나님을 강단으로 불러냈다는 것이었다.” 로이드 존스가 설교할 때,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는 실로 분명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강단으로 부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차녹이 그토록 유창하고 자세하게 설명한 바로 그 하나님에 목회자가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관계없이, 차녹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 사상가 한 사람을 읽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크고 넓은 기독교의 전통에 광범위하게 참여했던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당신은 이 책을 통해서 수 세기와 다양한 전통에 걸친 다른 사상가들을 (심지어 이교도 시인과 철학자들까지) 만날 것이다. 크신 하나님을 배우면서 동시에 더 큰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1,700쪽이 넘는 책을 읽는 것은 대단한 성취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묵상과 기도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결코 과거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진정으로 인생을 바꾼다. 책의 두께가 부담스럽다면, 일단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담론을 먼저 읽으라. 그리고 하나님이 매일 당신에게 보여주시는 다양한 자비에 대해서 겸손한 감사로 무릎 꿇을 준비를 하라. 아마도 당신은 지금도 쏟아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무시한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 백성의 지성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움직이실 하나님에 대한 더욱 견고하고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평소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는 생각에, 차녹의 이 대작을 두 권으로 편집하면서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에 관한 바른 관점은 오늘날 교회가 가장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 요구가 이 책으로 충족되기를 바란다. 내 생각에 지난 수백 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차녹의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처럼 교회를 준비시키고 도운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에 관해서는 그 어떤 칭찬도 결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God

마크 존스 Mark Jones | Faith Vancouver Presbyterian Church(PCA)의 담임목사이며, If I Could Speak: Letters from the Womb의 저자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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